확장

수도회는 조금씩 발전해 갔다.

수도회는 조금씩 발전해 갔다.

시대의 징표에 유의하며, 장상들은 다양한 사업을 시작하고 국경을 넘고 바다를 건너 수녀들을 파견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직업학교, 고아원, 내부봉사, 가난한 사람들 환대, 환자들을 돌봄, 사제들의 사업에 협력 등으로 사명의 형태가 다양해졌다.

 

빌통 (벨기에), 산 레모 (이태리),

콘스탄틴 (알제리), 에슈 (룩셈부르크)

우이다 (모로코), 말트섬에서

수녀들은 하느님의 사업을 하였다!

 

 20세기: 선교사 요청

 

20세기 초반, 수도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고 있는 영적 사건을 겪게 된다.

 

1929년 3월 12일, 교황 비오11세가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의 회칙을 최종 승인함으로써 수도회는 교황청 소속 되었다.

이에 대한 응답처럼 1932년, 황금심장의 성모 보랭에서 발현하였다.  (beauraing.catho.be).

멀리서의 선교사 요청에 응답하는 시기였다.

 

 1948년, 콩고 로와에 첫 진출

 1966년, 한국진출

 1967년, 상아해안과 칠레에 진출

1993년, 루마니아에 분원개설

 

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 는 수도자들에게 새로운 길을 걷도록 요청한다. 이  "아지오로나멘또"의 시기는 관대함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표출

되고, 이 움직임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음을 본다.